아테네를 처음 찾았을 때, 시내 어디에서든 시선을 들면 언덕 위로 하얗게 빛나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낮에는 강한 햇빛을 받아 눈이 시릴 정도로 밝게 보이고, 해가 지면 주황빛 조명이 비치며 도시 전체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정말 압도적이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고대 그리스 문명의 상징, 파르테논 신전이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이 자리한 곳, 아크로폴리스 언덕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 중심부에 있는 아크로폴리스 언덕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크로폴리스는 말 그대로 ‘높은 도시’라는 뜻으로, 방어에 유리한 지형 덕분에 고대부터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언덕 아래 번화한 거리에서 계단과 경사로를 따라 조금씩 올라가다 보면, 도시의 소음이 서서히 멀어지고 바람 소리와 발자국 소리만 들리기 시작합니다.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시야가 탁 트이면서 거대한 기둥들이 모습을 드러나는데, 이 순간 많은 사람들이 말없이 한참을 서 있게 됩니다. 사진으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공간 전체를 압도하는 존재감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건립 배경과 아테네의 황금기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5세기 중반, 아테네가 정치·군사·문화의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 건립되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페르시아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5세기 초,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특히 살라미스 해전에서의 승리를 통해 아테네는 군사적 명성과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전쟁 후에는 델로스 동맹의 중심 도시로서 막대한 재정적 이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전쟁 중 페르시아군이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하며 기존의 신전과 건물들을 파괴했는데, 이 폐허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지는 아테네에게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때 지도자 페리클레스가 중심이 되어 아크로폴리스를 대대적으로 재건하는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단순한 복구를 넘어, 당시 아테네의 힘과 자부심을 상징하는 ‘도시의 얼굴’을 새롭게 만들겠다는 야심이 담긴 프로젝트였습니다. 그 핵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신 아테나에게 봉헌하는 파르테논 신전이었습니다.
건축가, 조각가, 그리고 건축 양식의 특징
파르테논 신전의 건축 공사는 기원전 447년에 시작되어 기원전 438년경에 주요 구조가 완성되었습니다. 세부 조각 장식 작업은 기원전 432년까지 이어졌습니다.
건축 계획은 익티노스와 칼리크라테스가 담당했고, 전체 조각 프로그램과 신상 제작은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총괄했습니다. 이 세 인물의 협업 덕분에 건축과 조각, 비례와 상징이 정교하게 어우러진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이 완성되었습니다.
건축 양식으로 보면 기본적으로는 도리아식 신전이지만, 내부 프리즈에는 이오니아식 요소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꽤 실험적인 조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간결한 힘과 섬세한 우아함이 함께 느껴지는 독특한 인상을 만들어 냈습니다.
완벽해 보이기 위한 ‘불완전한’ 설계
파르테논 신전에 가까이 다가가면 처음에는 ‘균형이 잘 잡혀 있다’고 느끼게 되지만, 유심히 보면 완전히 직선이거나 완전히 평평한 부분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은 당시 장인들이 인체의 시각적 착시를 보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한 결과입니다.
- 기둥은 완전한 수직이 아니라, 약간 안쪽으로 기울어지도록 세워져 있습니다.
- 각 기둥은 중간 부분이 살짝 불룩한 엔타시스 기법이 적용되어, 멀리서 봤을 때 지나치게 가늘어 보이지 않도록 했습니다.
- 바닥면과 상부 구조(엔타블레이처)도 완전한 평면이 아니라, 중앙이 아주 미세하게 올라가 있는 곡선 형태입니다.
이러한 미세한 조정 덕분에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오히려 완벽한 직선과 비례로 인식되며, 신전 전체가 살아 있는 듯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됩니다. 직접 앞에 서 있으면 정지된 돌덩어리가 아니라, 안쪽으로 살짝 숨을 들이마신 채 균형을 잡고 서 있는 거대한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조각 장식에 담긴 이야기들
파르테논 신전에 새겨진 조각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아테네 사람들이 자신들의 도시와 신, 그리고 인간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보여주는 ‘돌로 된 이야기책’에 가깝습니다.
먼저, 양쪽 삼각형 지붕 부분인 페디먼트에는 중요한 신화 장면이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 동쪽 페디먼트: 제우스의 머리에서 탄생하는 아테나의 순간이 묘사되었습니다.
- 서쪽 페디먼트: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아테네의 수호신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신전 외벽 상단에 배치된 92개의 메토프에는 신과 인간, 문명과 야만의 대립을 상징하는 전투 장면이 새겨졌습니다. 거인족과의 전투, 켄타우로스와 라피타이의 싸움, 아마존 전사와의 전투, 트로이 전쟁 등 다양한 신화가 등장하지만, 그 공통된 메시지는 ‘질서와 이성이 혼돈과 폭력을 이겨낸다’는 것이었습니다.
내부 상부 벽을 따라 이어지는 약 160m 길이의 프리즈에는 판아테나이아 축제 행렬이 표현되었습니다. 아테네 시민, 제사장, 말과 마차를 이끄는 사람들, 제물과 봉헌물을 준비하는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한 행렬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전이 단순히 신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시민 스스로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공간이기도 했다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아테나 파르테노스와 신전의 상징성
파르테논이라는 이름은 ‘처녀’를 뜻하는 ‘파르테노스’에서 온 것으로, 아테네의 수호 여신인 아테나 파르테노스에게 봉헌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신전 내부에는 페이디아스가 제작한 거대한 아테나 파르테노스 상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높이가 약 12m에 이르는 이 상은 금과 상아로 만들어진 크리세레판티네 기법의 대표작이었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당시 기록과 후대에 제작된 모사품 등을 통해서만 그 모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이 아니라, 아테네 민주주의와 도시 국가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상징물이었습니다. 신들의 축복을 받는 도시이자, 스스로의 힘과 이성을 믿는 시민들의 공동체라는 자부심이 건축과 조각 전체에 녹아 있습니다.
수세기에 걸친 변형과 파괴의 역사
오늘날 파르테논 신전을 마주하면,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일부만 남아 있는 모습에 놀라게 됩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긴 세월 동안의 변형과 수난의 역사가 놓여 있습니다.
로마 제국 시기에는 여전히 신전으로 사용되었고, 아테네는 로마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철학과 학문의 도시’로 존중받았습니다. 이후 기원후 6세기경, 기독교가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면서 파르테논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교회로 개조되었고, 내부 구조와 일부 조각들이 이 과정에서 변경되었습니다.
15세기 오스만 제국이 아테네를 지배하게 되자, 파르테논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시기 건물 내부에는 미흐라브와 같은 이슬람 예배 요소가 추가되었고, 주변에도 부속 건물들이 들어섰습니다.
가장 큰 파괴는 1687년에 일어났습니다. 베네치아와 오스만 제국 사이의 전쟁 중, 오스만군이 파르테논 내부를 화약고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베네치아군의 포격이 신전을 직격하면서 내부에 있던 화약이 폭발했습니다. 이 폭발로 건물 중앙부가 크게 무너지고 수많은 조각들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오늘날 신전이 중간 부분이 크게 비어 있는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이때의 폭발 때문입니다.
엘긴 마블스와 문화재 반환 논쟁
19세기 초, 당시 오스만 제국 주재 영국 대사였던 엘긴 경은 오스만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았다는 명목으로 파르테논의 여러 조각들을 떼어내 영국으로 반출했습니다. 이 조각들은 흔히 ‘엘긴 마블스’라고 불리며, 현재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전시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는 오랫동안 이 조각들의 반환을 요구해 왔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국제 사회에서 중요한 문화재 반환 논쟁의 사례로 거론됩니다. 아테네에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새로 지어져, 현지에 남아 있는 파르테논 조각들과 함께 원래의 배치를 최대한 복원하는 방식으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박물관 안에서 빈칸으로 남겨진 부분을 보면, 아직 타국에 있는 조각들의 부재를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날 파르테논 신전을 찾는다는 것
지금의 파르테논 신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리스 정부와 국제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장기적인 복원·보존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장을 방문하면 여기저기 비계와 크레인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조금 아쉽게 느껴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건축물을 앞으로도 오래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덕 위에서 아테네 시내를 내려다보면, 고대와 현대가 겹쳐 보이는 독특한 감각이 찾아옵니다. 수천 년 전 이 신전을 올려다보던 사람들도, 전쟁과 정치, 일상의 걱정을 안고 이 도시를 살았을 것입니다. 돌로 된 건축물은 많이 부서졌지만, 그 시대 사람들이 추구했던 균형, 질서, 공동체의 이상은 여전히 이 자리에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