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퇴직연금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막연히 ‘나중에 은퇴하면 받는 돈’ 정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급여 명세서에 퇴직연금 적립 내역이 보이고, 회사에서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제도를 운영한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돈은 도대체 어디에 있고, 누가 어떻게 굴리고 있을까?’ 그때부터 하나씩 찾아보고, 실제로 금융기관 앱에 접속해서 상품을 바꿔 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감을 잡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 이름으로 쌓이는 퇴직연금이지만, 그 안에서 어떤 상품을 선택할지는 결국 제가 결정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운영하는 퇴직연금 제도는 크게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나뉩니다. 확정급여형(DB)은 회사가 책임지고 운용하기 때문에 근로자가 직접 상품을 고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DC형과 IRP를 기준으로,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 운용하는지, 그리고 상품을 고를 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정리해 보겠습니다.
근로복지공단 퇴직연금의 구조 이해하기
먼저 한 가지를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퇴직연금 제도와 관련된 행정, 관리, 감독을 담당하는 기관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퇴직연금 자산을 굴리고, 예금이나 펀드 같은 상품을 고르는 일은 근로자가 선택한 금융기관(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을 통해 이뤄집니다. 겉으로는 “근로복지공단 퇴직연금 운용”이라고 부르지만, 실질적으로는 은행이나 증권사 앱에서 본인이 운용 지시를 내리는 구조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즉, 제도는 근로복지공단, 실제 돈이 들어가 있는 계좌와 상품 선택은 금융기관, 최종 선택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는 셈입니다.
내 퇴직연금이 DC인지 IRP인지부터 확인하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 내가 어떤 유형의 퇴직연금과 연결돼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확정기여형(DC)이라면 회사가 매년 일정 금액을 퇴직연금 계좌로 넣어주고, 그 돈을 어떻게 굴릴지 근로자가 선택합니다. 이때 계좌는 반드시 특정 금융기관에 개설되어 있고, 그 정보는 회사 인사·총무 담당자나 퇴직연금 담당자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 근로복지공단 퇴직연금 관련 사이트나 안내 자료를 통해서도 자신의 제도 유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인형퇴직연금(IRP)는 이름 그대로 개인이 가입한 계좌입니다. 퇴직금을 한 번에 받지 않고 계좌로 옮겨 두거나, 스스로 추가 납입을 하면서 노후 대비를 하는 방식입니다. 보통 IRP에 가입했다면 어느 은행, 어느 증권사에서 만들었는지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내 퇴직연금 계좌가 어느 금융기관에 있는지”와 “DC인지, IRP인지”를 먼저 정리해 두면 이후 과정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금융기관 계좌 접속해서 현재 상황부터 확인하기
계좌가 어느 금융기관에 있는지 알았다면, 이제는 실제로 접속해 보는 단계입니다. 각 금융기관의 인터넷 뱅킹 홈페이지나 모바일 앱, 또는 퇴직연금 전용 앱이 있는 경우 그 앱을 통해 로그인합니다. 공인인증서(공동인증서), 간편인증, 휴대전화 인증 등으로 본인 확인을 거친 뒤, 퇴직연금 메뉴로 들어가면 됩니다.
안에 들어가 보면 지금 내 퇴직연금이 어떤 상품에 얼마씩 들어가 있는지, 최근 수익률이 어느 정도인지, 원금과 평가금액이 어떻게 다른지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금처럼 안정적인 상품에만 들어가 있을 수도 있고, 주식형 펀드나 TDF 같은 투자 상품에 일부가 배분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일단 “현재 상태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아직 상품을 바꾸지 않아도 괜찮으니, 화면을 천천히 눌러 보면서 구조를 익혀 두는 것이 좋습니다.
투자 성향 진단으로 나에게 맞는 스타일 찾기
퇴직연금 자산을 본격적으로 운용하기 전에는 금융기관에서 제공하는 투자 성향 진단을 반드시 진행해야 합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법적으로 정해진 절차에 가깝습니다. 설문은 보통 온라인으로 간단히 할 수 있고, 예상 수익률보다는 “내가 어느 정도 손실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합니다.
질문은 대략 이런 내용을 다룹니다.
- 은퇴(또는 자금을 쓸 시점)까지 남은 기간
- 현재 소득과 저축 수준
- 손실이 났을 때 심리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감내할 수 있는지
- 과거 투자 경험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상품을 선호했는지
이 설문을 바탕으로 금융기관은 보통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투자 성향을 나눕니다.
- 안정형: 원금 손실을 거의 감당하기 어렵고, 조금 적게 벌어도 괜찮은 유형
- 안정추구형: 약간의 손실은 감수하지만 큰 변동은 원하지 않는 유형
- 위험중립형: 수익과 위험을 비슷한 비중으로 고려하는 유형
- 적극투자형: 비교적 큰 변동을 감수하고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유형
- 공격투자형: 손실 가능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고위험·고수익을 선호하는 유형
투자 성향 진단 결과는 정답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이해하는 기준점” 정도로 보는 편이 좋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득이나 가족 상황, 은퇴 시점이 바뀌면 성향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퇴직연금에서 고를 수 있는 상품의 큰 틀 이해하기
퇴직연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원리금보장형, 다른 하나는 실적배당형입니다. 이름은 어려워 보여도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원리금보장형 상품
원리금보장형은 말 그대로 내가 넣은 원금과 약속된 이자를 금융기관이 책임지고 돌려주는 상품입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예금·정기예금: 은행에서 제공하는 가장 익숙한 형태의 상품입니다. 원금이 보장되고, 정해진 이율에 따라 이자를 받습니다. 안전하지만, 이자율이 낮아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할 위험이 있습니다.
- ELB(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 등 구조화 상품: 특정 주가지수나 금리에 연동되어 수익이 결정되지만, 일정 조건 아래에서는 원금이 보장되도록 설계된 채권성 상품입니다. 예금보다는 구조가 복잡하지만, 약간 더 높은 이자를 목표로 합니다.
- 보험사의 확정금리형 상품(GIC 등): 보험사가 일정 기간 동안 확정 금리를 제시하는 상품입니다. 계약 기간 동안 정해진 이율을 적용해 주는 대신, 중도 해지 시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원리금보장형의 가장 큰 장점은 손실 위험이 매우 낮다는 점입니다. 대신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도 제한적이어서, 장기간에 걸쳐 물가가 오르면 실제 체감 자산 가치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실적배당형 상품
실적배당형은 운용 결과에 따라 수익이 달라지는 상품입니다. 시장 상황이 좋으면 많이 오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손실이 날 수도 있습니다.
- 펀드:
- 주식형 펀드: 주식 비중이 높습니다.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변동성이 큽니다.
- 채권형 펀드: 채권 비중이 높습니다. 주식형보다 변동성이 작고 안정적인 편이지만, 기대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 혼합형 펀드: 주식과 채권을 섞어서 운용합니다. 위험과 수익을 중간 정도로 맞추려는 목적의 상품입니다.
- ETF(상장지수펀드): 특정 주가지수(예를 들어 코스피, S&P 500 등)를 따라가도록 설계된 펀드입니다. 주식처럼 거래소에 상장되어 있지만, 기본 구조는 펀드에 가깝습니다.
- TDF(Target Date Fund): 목표 은퇴 시점을 기준으로 자산 배분을 자동으로 조정해 주는 펀드입니다. 예를 들어 “2045년 은퇴”를 목표로 하는 TDF에 가입하면, 은퇴가 멀 때는 주식 비중을 높게 가져가고,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채권 비중을 늘려서 위험을 줄이는 식으로 운용합니다. 전문 지식이 많지 않아도 하나의 상품으로 전체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어, 퇴직연금을 처음 운용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선택됩니다.
- TRP(Target Risk Portfolio): 은퇴 시점이 아니라 투자자가 감당하고 싶은 위험 수준에 맞춰 자산 배분을 해 주는 펀드입니다. 예를 들어 “중위험·중수익형” TRP를 선택하면 그 수준에 맞도록 주식과 채권 비중을 조정해 줍니다.
실적배당형의 장점은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노려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원금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투자 성향과 은퇴까지 남은 기간을 고려해 비중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에게 맞는 포트폴리오 구성하기
원리금보장형과 실적배당형의 특징을 이해했다면, 이제 두 부류의 상품을 얼마나 섞을지 결정해야 합니다. 이를 포트폴리오 구성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금액이라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장기적인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포트폴리오를 짤 때 생각해야 할 요소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현재 나이와 예상 은퇴 시점까지 남은 기간
- 매달 또는 매년 추가 납입이 가능한지 여부
- 다른 자산(예금, 부동산, 주식 등)의 규모와 안정성
- 시장 변동에 대한 심리적 부담 정도
예를 들어 안정추구형 성향이라면, 다음과 같은 구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예금 등 원리금보장형 50%
- 채권형 또는 안정적인 혼합형 펀드 30%
- TDF나 기타 혼합형 펀드 20%
반대로 적극투자형이라면, 은퇴까지 시간이 충분히 남았다는 전제 하에 이런 선택도 가능합니다.
- TDF 한 가지 상품에 100% 투자
- 또는 주식형 펀드 50% + 혼합형 또는 채권형 펀드 30% + 예금 20%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통적으로 기억해 두면 좋은 원칙은 “한 가지 상품에 몰지 않고 나누어 투자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품이 부진해도 다른 상품이 어느 정도 완충 역할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운용 지시 내리는 방법 이해하기
포트폴리오 방향을 정했다면, 이제 금융기관의 온라인·모바일 시스템에서 실제로 운용 지시를 내릴 차례입니다. 보통 다음 두 가지를 구분해서 설정해야 합니다.
- 지금까지 쌓인 돈(기존 적립금)을 어떻게 바꿀지
- 앞으로 새로 들어올 돈(신규 납입금)을 어떤 상품으로 투자할지
기존 적립금을 조정하는 것을 흔히 ‘리밸런싱’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그동안 거의 예금에만 들어가 있던 퇴직연금 일부를 TDF나 펀드로 옮기고 싶다면, “자산 재배분” 또는 “상품 변경” 메뉴를 통해 비중을 새로 지정하면 됩니다.
신규 납입금 운용 지시는, 앞으로 회사에서 매달 DC 계좌로 넣어주는 돈이나, IRP에 본인이 추가 납입하는 금액을 어떤 상품들에 몇 퍼센트씩 나누어 투자할지를 정하는 과정입니다. 이 설정을 한 번 해 두면, 이후에 들어오는 돈은 자동으로 지정한 비율대로 배분됩니다.
각 금융기관 앱의 화면 구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 흐름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상품 목록에서 원하는 상품을 고른 뒤, 비중(퍼센트)나 금액을 입력하고, 최종 확인을 하면 운용 지시가 완료됩니다.
정기적인 점검과 리밸런싱의 중요성
퇴직연금은 한 번 설정해 두고 영원히 방치하는 자산이 아닙니다. 보통 수십 년에 걸쳐 운용되는 돈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점검하고 필요하면 방향을 조정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자주 바꾸는 것도 좋지 않지만, 최소한 다음과 같은 시기에는 한 번씩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 1년에 한 번 정도 수익률과 자산 구성을 확인하고 싶을 때
- 주식 시장이나 금리 등 큰 시장 변화가 있었을 때
- 결혼, 출산, 주택 구입 등 큰 생활 변화가 생겼을 때
- 은퇴 시점이 가까워지기 시작했을 때
예를 들어, 처음에는 주식 비중이 50%였는데, 이후 주가가 많이 올라서 주식 자산 비중이 전체의 70%까지 늘어났다면, 원래 계획했던 위험 수준보다 더 위험해진 상태입니다. 이때 일부를 채권형이나 예금으로 옮겨 비중을 다시 조정하는 것을 리밸런싱이라고 합니다.
일부 금융기관은 일정 주기마다 자동으로 자산 비중을 원래 비율에 가깝게 맞춰 주는 ‘자동 재배분’ 기능을 제공합니다. TDF의 경우, 자체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주식 비중을 줄이고 채권 비중을 늘리는 구조를 갖고 있어서, 일종의 자동 리밸런싱 기능이 내장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문가 상담을 적절히 활용하는 방법
퇴직연금 운용이 혼자서 결정하기 버겁게 느껴질 때는, 금융기관의 퇴직연금 상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은행과 증권사에는 퇴직연금 전담 창구나 상담 인력이 있어서, 투자 성향 결과를 바탕으로 포트폴리오 예시를 제시해 주거나, 상품 구조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줍니다.
다만 근로복지공단은 제도 전반에 대한 설명, 적립 구조, 법적 규정 등에 대해서는 안내를 해 주지만, “어떤 펀드를 몇 퍼센트 사라”와 같이 개별 상품을 직접 추천하거나 운용 지시를 대신해 주지는 않습니다. 제도 설명과 상품 선택은 역할이 다르다는 점을 구분해 두면 도움이 됩니다.
퇴직연금을 다룰 때 꼭 기억해 두면 좋은 점들
퇴직연금은 결국 나중에 일을 그만두었을 때 생활을 지탱해 줄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래서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기보다는,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장기 투자라는 점을 잊지 않기: 몇 달 수익률에 마음이 흔들리기 쉽지만, 퇴직연금의 시간 단위는 보통 10년, 20년 단위입니다.
- 분산 투자하기: 한 가지 상품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여러 상품에 나누어 투자하면 특정 자산이 크게 흔들려도 전체 계좌의 충격을 줄일 수 있습니다.
- 수수료 확인하기: 펀드나 TDF, ETF 등은 운용 보수나 수수료가 붙습니다. 비슷한 상품이라면 수수료가 낮은 쪽이 장기적으로 더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 은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위험 줄이기: 아직 은퇴까지 여유가 있을 때는 주식 비중을 상대적으로 높게 가져갈 수 있지만, 은퇴가 임박하면 원리금보장형이나 채권형 비중을 늘려서 큰 손실 가능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조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세제 혜택 활용하기: 특히 IRP는 일정 한도 내에서 납입액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세금 측면에서도 이득을 볼 수 있으니, 본인의 소득과 한도를 확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퇴직연금은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라서 관심이 잘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오늘 조금씩 쌓아 두고 신경 써 준 선택들이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제도와 구조를 이해하고, 금융기관 계좌를 직접 열어 보면서 내 자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면, 퇴직연금은 막연한 숫자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노후 재산으로 느껴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