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 일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분야로 옮긴 지 오래지만, 처음 현장에 나갔을 때 들었던 생소한 용어들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헷갈렸던 게 ‘루베’와 ‘헤베’라는 말이었습니다.
대학에서는 평방미터, 입방미터 같은 공식 단위만 배웠기 때문에 이런 말을 현장에서 들으면 처음엔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일본식 발음에서 유래된 표현들이 많아,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헤베는 면적을 뜻하는 평방미터를 일본식으로 부른 말이고, 루베는 입방미터의 일본식 표현입니다. 각각 일본어 발음인 ‘헤이베이’, ‘류베이’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국에서는 이게 줄고 변형되면서 지금의 형태로 굳어진 것이죠.
엄밀히 말하면 지금은 더 이상 써서는 안 되는 표현들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시공 현장에서는 여전히 자주 쓰이고 있고, 큰 건설사에서도 이런 말을 쓰는 경우를 자주 봤습니다. 설계사보다는 시공사 쪽에서 더 흔한 편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가 “1루베는 몇 kg인가요?”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 자체가 조금 잘못된 겁니다. 루베는 부피, 즉 체적의 단위입니다. 물이냐, 콘크리트냐, 흙이냐에 따라 무게는 전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물 1루베는 약 1,000kg, 콘크리트는 약 2,300kg 정도 됩니다. 같은 1루베라도 재료에 따라 무게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숫자로 답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죠.
이런 표현은 되도록이면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식 단위가 자리 잡은 지 오래됐고, 국제적으로도 통일된 기준을 쓰는 게 훨씬 더 바람직하니까요. 다만 오랫동안 써온 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익숙함이라는 게 참 무서운 거죠. 게다가 가끔은 이런 말을 쓰면 업계 사람처럼 보여서 괜히 있어 보인다는 느낌도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미국식 단위를 볼 때마다 더 혼란스럽습니다. 피트, 인치, 야드 같은 단위는 계산하기도 어렵고 10진법이 아니다 보니 더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전 세계가 하나의 도량형을 쓰면 얼마나 편할까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미국이 여전히 강대국이라는 걸 이런 데서도 실감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루베나 헤베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모두가 공식 단위로 소통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합니다. 그게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이 중요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