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 공항에 새벽 시간에 도착했을 때, 긴 비행 끝에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한동안 아껴 두었던 위스키였습니다. ‘이걸 그냥 집에 두고 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입국장으로 걸어가면서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혹시라도 주류 반입 규정을 잘못 알고 와서 세관에서 걸리면 어쩌나 걱정이 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세관 앞에서 가방을 열어보는 사람들을 보니, 출발 전에 규정을 제대로 확인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필리핀 주류 반입 기본 규정
필리핀에 입국할 때 주류는 1인당 최대 2리터까지 반입이 허용됩니다. 이 한도는 면세점에서 구입한 술과 일반 상점에서 구입한 술을 모두 합산한 양으로 보시면 됩니다.
대략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 이해가 조금 더 쉽습니다.
- 750ml 와인 기준 약 2~3병 정도
- 1리터짜리 위스키 또는 리큐어 2병 정도
정확히 병 수를 규정해 둔 것은 아니라 리터 기준으로만 관리되기 때문에, 여러 병을 섞어 가져가더라도 총량이 2리터를 넘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주류를 반입하는 사람의 나이가 만 18세 이상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동행하는 가족 가방에 술을 나눠 담더라도, 실질적으로 소지한 사람의 연령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미성년자 명의로 주류 반입 한도를 늘리려는 시도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한도는 어디까지나 개인 소비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같은 종류의 술을 여러 박스 단위로 가져가거나, 병 수가 지나치게 많아 보이면 세관에서 상업적 용도로 판단할 수 있고, 이 경우에는 관세와 세금 부과뿐 아니라 반입 제한을 받을 수 있습니다.
2리터를 초과했을 때의 처리와 유의점
가끔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기념으로 사고 싶은 술이 많아져서, 2리터를 넘겨 가져가고 싶은 유혹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숨기지 말고 신고하기’입니다.
필리핀 세관 규정에 따르면 2리터를 초과하는 주류는 반드시 세관에 신고해야 하며, 초과분에 대해서는 관세와 세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세관 검색대에서 가방을 열었을 때 신고하지 않은 초과 주류가 나오면, 단순한 세금 부과를 넘어 압수나 벌금 등 더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입국장에서 보면, 가끔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신고를 하지 않았다가 세관원에게 추가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박스 포장된 주류나 고가 위스키는 눈에 띄기 때문에, 애매하다 싶으면 신고 쪽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안전합니다.
주류 외 일반 물품 면세 원칙
술과 담배를 제외한 일반 물품에 대해서는, 필리핀 세관이 명확한 금액 한도를 관광객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물품의 성격과 수량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기본 개념은 ‘개인 사용을 위한 합리적인 수량’입니다.
예를 들어, 여행 중 사용할 옷, 세면도구, 화장품, 노트북 한두 대, 카메라 한 대 정도는 일반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세관에서 상업적 용도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 같은 모델의 전자제품을 여러 대씩 가져가는 경우
- 시계, 보석류 등 고가품을 과도한 수량으로 소지한 경우
-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제품을 박스째로 여러 개 반입하는 경우
필리핀 거주자나 해외 근로자(OFW)의 경우, 일정 금액 이하(통상 PHP 10,000 미만)의 개인 물품에 대해 면세를 인정해 주는 규정이 있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관광객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기준은 아닙니다. 다만 이 정도 금액을 크게 넘는 고가품이 여러 개 있다면, 세관 신고가 필요할 수 있다는 정도로 참고하면 좋습니다.
고가품과 세관 신고 요령
최근에는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미러리스 카메라 등 고가 전자제품을 여러 개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보니, 세관에서도 이 부분을 유심히 보는 편입니다. 특히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제품이 여러 개 보이면, “필리핀 내에서 판매할 목적이 아닌가”를 확인하는 질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하려면 다음과 같은 준비가 도움이 됩니다.
- 고가품을 새로 구입했다면, 영수증을 보관해 두기
- 이미 사용하던 기기라면, 포장을 제거하고 평소 사용 흔적이 보이도록 하기
- 입국 전 세관 신고서에 해당 물품을 솔직하게 기재하기
입국장에 들어서면 세관 신고서(Customs Declaration Form)를 작성하게 되는데, 이때 반입하는 주류와 고가품을 정확하게 적어 두면, 오히려 세관 직원과의 대화가 더 간단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숨기다가 적발되는 것보다, 처음부터 공개하고 합리적인 설명을 하는 편이 훨씬 수월합니다.
필리핀 여행 준비 전에 확인하면 좋은 점
주류와 면세 규정은 각 나라의 정책과 상황에 따라 수시로 조금씩 바뀔 수 있습니다. 필리핀도 예외는 아니라, 실제 적용 기준이나 세율 등이 변동될 여지가 있습니다. 출발 전에는 다음과 같은 점을 한 번 더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 필리핀 관세청(Bureau of Customs)의 최신 안내
- 주한 필리핀 대사관 또는 총영사관에서 제공하는 여행자 안내
-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기내 안내문 또는 공항 면세점 안내
출발 공항 면세점에서 술을 고를 때, 다른 여행자들이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라며 서로에게 묻고 답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때마다 느꼈던 건, 결국 가장 확실한 기준은 ‘공식 정보’와 ‘정직한 신고’라는 점이었습니다. 규정을 제대로 알고 가방을 꾸리면, 입국 심사대 앞에서도 마음이 훨씬 편안해집니다.